명상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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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의 의미와 수행에 대한 인식론적 이해 자세히보기
  • 자료유형학위논문
  • 저자명김형철
  • 학회/출판사/기관명서울 :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2007
  • 출판년도2007
  • 언어한국어
  • 학술지명/학위논문주기학위논문(석사)--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 신학대학원 200702
  • 발행사항서울 :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2007
  • ISBN/ISSN
  • 소개/요약‘여실지견’(如實知見), 진리를 깨달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에서 정견(正見)은 특별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정견은 깨달음의 시작임과 동시에 깨달음의 완성이다. _x000D_정견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후 처음 설법하신 사성제(四聖諦)의 진리를 깨닫기 위한 팔정도(八正道) 수행법 중에서 첫 번째로 진리를 향한 출발점이다. 정견을 시작으로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 일어나고 마침내 사성제의진리를 알게 된다. 그런데 ‘사성제의 진리를 아는 것’을 또한 정견이라고 하여 정견은 깨달음의 시작과 완성이라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_x000D_사성제는 연기법(緣起法)에 대한 실천적인 가르침이고 연기법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를 정리한 최초의 법이다. 따라서 사성제를 아는 정견은 곧 연기법을 아는 것이고 연기법을 아는 것은 무지(無知)의 오류에서 벗어난 참된 진리의 세계가 있음을 아는 것이기에 정견은 곧 진리를 아는 것이 된다. _x000D_우리의 인식이 무지에 가려져 있으면서도 진리를 향한 최초의 정견이 일어나고 마침내 진리를 완전히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불성(佛性)이 있기 때문이다. 불성은 진리 그 자체로 진심(眞心), 본각(本覺), 여래장(如來藏) 등으로 불린다. 진리 그 자체인 불성이 우리 안에서 역동적으로 작용하여 스스로를 우리에게 드러내며 무지에 가려져 있는 우리의 인식을 정화시킨다. 우리는 불성의 이러한 본성과 작용 때문에 진리를 알 수 있다. 불성이 최초의 정견을 일으키며 마침내는 완전한 진리와 만나도록 우리를 이끌어 간다. 그리고 우리가 완전한 진리를 만날 때, 신기하게도 그 진리가 이미 우리 안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바로 깨달음의 시작이자 완성인 불성이다. 깨달음이 정견에서 시작하여 정견으로 완성된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불성은 일심이문(一心二門)의 인식체계로 이루어져 무지에 가려져 있는 인식을 정화하고 진리를 일깨운다. _x000D_ 우리를 진리로 이끄는 불성의 작용에 따라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우리의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곧 정견의 수행체계이다. 정견은 팔정도 안에서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완성된다. 특히 그 중에서 정사유와 정념, 정정과 구체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정사유는 믿음의 측면에서, 정념과 정정은 행동으로 드러나는 수행의 측면에서 중요하다. 정념은 사념처(四念處) 수행법을 그 내용으로 하여 몸[身], 감각[受], 마음[心], 법[法]을 관찰한다. 몸, 감각, 마음, 법은 연기법에 기초한 개념들로 정념 수행을 통해 몸, 감각, 마음, 법을 관찰함으로써 무지를 조건으로 하는 인식에서 벗어나 참다운 실재를 보게 된다. 현대의 위빠사나 수행법과 정념에 대한 현대 서구 의학의 평가, 심리학적 해석들을 통해 정념이 전통적인 종교적 수행법일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현대적인 수행법임을 알 수 있다. 정념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정은 진리를 깨닫는 여정에서 만나는 수동적 기다림의 의미와 필요성을 말해준다. _x000D_ 불성의 작용으로 일어난 최초의 정견은 인간에게 수동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 정견이 인간의 능동적인 수행인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으로 이어지고 다시 수동적 기다림인 정정을 거쳐 마지막 완성으로서의 정견인 정지견(正知見)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특별한 의미와 인식의 과정을 갖는 정견은 또한 진리와 인간의 인식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면서 일치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진리와 인간의 인식은 진리 안에서 이미 일치하지만 인간의 인식 안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정견은 곧 그 진리와의 일치가 완성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