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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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의 선사상 연구 자세히보기
  • 자료유형학위논문
  • 저자명박돈우
  • 학회/출판사/기관명서울 : 동국대학교 대학원, 2019
  • 출판년도2019
  • 언어한국어
  • 학술지명/학위논문주기학위논문(석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 불교학과 2019. 8
  • 발행사항서울 : 동국대학교 대학원, 2019
  • ISBN/ISSN
  • 소개/요약본 논문은 퇴옹(退翁) 성철(1912∼1993)선사가 일관되게 주장한 선사상에 대한 연구 분석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자신의 깨달음을 근거로 하고 경론과 어록의 자료로 보충설명하며 재차 강조한 돈오돈수(頓悟頓修) 사상을 중심으로 돈오점수 (頓悟漸修) 사상과 비교하여 깨달음의 본질(本質)에 대해 파악하려고 하였다. 깨달음은 부처님과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는 모든 불자(佛子)들의 관심사이며 출가자와 재가자, 나라와 종파를 떠나 수행의 궁극적 지향점(指向點)인 동시에 목적지(目的地)이다. 따라서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것이며, 그 깨달음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여전히 화두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의 문제를 과거와 현재의 시대적 흐름에서 살펴보고 성철의 사상적 배경과 견성관, 중도(中道)와 돈오돈수(頓悟頓修)를 포함한 성철의 선사상 전반에 대한 고찰로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선문의 정로임을 확인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 보려 하였다. 성철이 돈오돈수를 주장하기 시작한 시점은 1940년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오도(悟道)한 이후부터이며, 제자들에게도 “꿈을 깨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꿈을 깨기 위해서는 간화선(看話禪)인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참선을 통해서 본래면목을 찾아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 있다. 한국 불교 선의 정통성은 돈오돈수 사상에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스님은 약방문은 환자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병의 뿌리까지 없앤 사람은 필요 없듯이 가르침과 수행이 더 필요한 것은 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팔만대장경이나 역대 조사의 천칠백공안도 모두 필요 없는 사람, 더 이상 배우고 익힐 것이 없는 사람이 바로 견성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성철은『선문정로(禪門正路)』에서 “견성(見性)은 일체망념(一切妄念)이 끊어져 대열반계(大涅槃界), 대무심경계(大無心境界)를 실증(實證)한 것으로 이것이 깨달음이며 대무심경계를 자유자재하게 영위하는 것이 오후보임(悟後保任)이다”라고 깨달음과 깨달음 이후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성철의 견성관은 성철이 제시한 화두삼관(話頭三關)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를 통해 견성성불(見性成佛)의 개념(槪念)을 명확히 했다. 화두삼관이란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를 말하며 오매일여(寤寐一如)를 몽중일여와 숙면일여로 구분하였다. 성철은 아무리 깨달았다고 해도 오매일여가 아니면 견성이 아니라 말해 견성의 기준이 바로 오매일여임을 밝혔다. 즉 깊은 잠에(熟眠)들어서도 화두 일념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일초직입(一超直入)해서 크게 깨쳤다 해도 깨친 것이 아니라 망식(妄識)의 움직임이며 숙면일여(熟眠一如) 해야 비로소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백일법문(百日法門)』에서는『유식론(唯識論)』의 문장을 인용한 해설에서 “큰 병이 나거나 다치든지 하여 기절했다 하여도 변동이 없으며 언제든지 한결같다”는 것이 참다운 오매일여라고 상세하게 설명(說明)하고 있다. 성철의 선사상과 대립되는 사상은 먼저 깨달은(先悟) 이후, 닦음(後修)과 단계(次第·漸次)가 반드시 필요한 돈오점수(頓悟漸修)이다. 선에서의 돈점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육조단경』에서 남돈북점(南頓北漸)의 남돈선(南頓禪)의 혜능과 북점선(北漸禪)의 신수의 주장이 서로 깨침(頓悟)과 닦음(漸修)을 강조한 차이에 있듯이 지눌(1158∼1210)은 돈문(頓門)의 입장에서 닦음을 강조한 종밀의 돈오점수설을 채택했다. 지눌은『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普照國師修心訣)에서 “본래의 성품이 부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으나 오랜 세월의 습기(習氣)는 갑자기 제거하기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해 닦고 점점 익혀서 공을 이루고, 또 오랫동안 성인의 자질을 잘 길러나가야 성인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즉시 깨닫는 것도 과거를 미루어보면 이미 여러 생애에 걸쳐 깨달음에 의지해 닦고 차츰 익혀왔으므로 금생에 이르러 진리를 들으면 즉시 깨닫게 되는 것이니 이것(頓悟頓修) 역시 먼저 깨닫고 뒤에 닦은 근기”라고 해 돈오는 점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지눌은 돈오 이후 닦음을 역설적인 닦음, 돈오 이전을 억압과 수고로움의 수행이라고 보고 돈오(頓悟)는 수행(修行)의 완성이 아니라 마음의 실상에 눈을 뜨는 체험(體驗)이며 닦음의 출발로 보았기 때문에 반드시 점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지눌의 돈오점수는 자기가 곧 부처임을 깨닫고 올바른 믿음을 지니는 최초의 지적 해오(解悟) 단계를 거쳐 과거(過去)의 습기(習氣)를 지속적으로 씻어내고 청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점수(漸修)의 두 번째 과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성철은 어떤 불완전한 단계에 의미를 부여(知的解悟)하고 그것을 되살리는 것은(漸修) 마음의 조작(有心)으로 진정한 참선과도 거리가 멀기 때문에 돈오점수를 배격하였다. 보조국사가 입적한지 770년만인 1981년 성철의『선문정로』출판을 계기로 돈오점수(頓悟漸修)는 선문의 정로(正路)가 아니라는 주장이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는 보조국사의 위상뿐 아니라 수증관(修證觀)을 뒤흔든 주장이였으며 돈점문제가 본격적으로 검토되기 시작되었고, 이후 다양한 비판(批判)에 직면하게 되었다. 보조이후 돈오점수는 수행자들에게 깨달음의 지침이 되었고 이견(異見)없이 받아들여져 고정 관념화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이와 반대되는 성철의 주장은 교와 선에 대한 도식적 사고방식을 한꺼번에 허물고 막혔던 물줄기를 터트리듯이 선의 정맥을 다시 흐르게 하는 일이였다. 보조에 있어서 증오(證悟)는 상근기(上根機)의 사람이 과거생의 닦음에 의한 것이 금생에 이른 것이고, 궁극적 이상으로 내세웠을 뿐 구체적으로 제시한 적은 없어 과거·미래 지향적이었으나 성철은 증오를 돈오돈수에 포함시켜 즉시(卽時)에 구경무심경(究竟無心境)이 나타나는 현재 지향적이었다. 간화선(看話禪)은 화두 참구를 통해 성철과 같이 청정승가의 표상이 되고 대중들의 존경과 수행의 지침이 되어 누구라도 ‘와서 보라’ 할 수 있는 선지식이 나타날 때 존재 가치를 지니며, 선지식을 찾아 대장부의 기개를 펼치며 묻고 답할 수 있는 대중들이 있을 때 비로소 생명력을 지닌다. 문명의 이기가 발달한 오늘날은 각 나라의 불전과 설법을 포함한 경전 등을 다양한 방법으로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티베트, 베트남, 남방의 위빠사나, 일본, 서구불교가 혼재한 다불교시대가 되어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의 전통 수행법도 다불교 전통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상황을 직시해 바르게 확립된 선사상이 다양한 방법으로 널리 유포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철의 가르침대로 기도하고 수행하는 불자들이 도처에 있듯이 성철의 선사상으로 견성을 이루는 공부인이 많이 탄생되어 간화선의 정통성이 불교와 사회의 대안(代案)이며 모든 중생의 의지처와 희망이 되는 날이 하루빨리 정착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