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도서관
『淸淨道論』의 漸敎的 敎育體系 硏究 : 사마타(samatha)와 위빠사나(vipassanā)의 修行體系를 中心으로 = (A) study on the gradual educational system in the Visuddhimagga : at the centre of the systems of practice in ‘samatha’ and ‘vipassan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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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유형학위논문
- 저자명이송곤
- 학회/출판사/기관명서울 : 東國大學校, 2014
- 출판년도2014
- 언어한국어
- 학술지명/학위논문주기학위논문(박사)
- 발행사항서울: 동국대학교, 2014.
- ISBN/ISSN
- 소개/요약논자는 차제적이고 비차제적인 특성을 띠는 淸淨道論의 칠청정의 수행체계를 단계별로 살펴봄으로써 비구가 마음을 닦아 완성된 모습으로 어떻게 변화해 가는가 밝히고자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인간형성의 기능을 갖고 있는 청정도론의 수행체계는 현대 학교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인간형성과 비교할 때 서로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고 하겠다.
같은 점은 수행을 통해서든, 학교교육을 통해서든, 이전과 비교할 때 이후에 다른 인간으로 성장, 변화했다는 점에 있다. 즉,인간의 됨됨이가 전보다 성장하는 모습으로 변화가 이루어진 측면에서 같다고 하겠다.
다른 점은 삼매(定)나 지혜(慧)의 수행으로 마음을 닦아 인간형성을 하게 되는 경우는 脫世俗的인 특성을 띠는 반면에, 학교교육에서는 지식을 배움으로 인간형성을 하게 되므로 世俗的인 특성을 띠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학교교육은 그 목적이 근본적으로 지식의 획득으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바람직한 인간이 되도록 하는 데 있지만, 반면에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는 학교교육에서 말하는 지식이 아니라 마음을 닦음으로써 감각적 욕망을 끊고 初禪에 들어가 二禪, 三禪을 거쳐 四禪에 이르러 本三昧를 견고하게 유지하고, 더욱이 四念處 수행에 의한 통찰지로 5온, 4대, 18계의 물질과 정신이 무상, 고, 무아임을 깨달아 삼세의 여섯 가지 의심을 끊고, 위빠사나의 지혜로 갈애를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Nibbāna에 이르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이다.
청정도론의 칠청정의 수행체계는 이와 같이 종교인 불교의 수행체계이기 때문에 학교교육과 근본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지만, 최상의 인격이라고 할 수 있는 닙빠나에 이르기까지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수행방법에 의해 마음을 닦음으로써 비구의 내면의 의식의 흐름과 인간의 됨됨이가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양철학의 어느 思潮나 교육사상을 보더라도 마음을 닦음으로써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인 닙빠나에 이르는 과정을 심도있게 다룬 경우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청정도론의 칠청정의 수행체계에 현대 교육적 의의가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청정도론의 수행체계는 현대교육의 성적과 결과위주의 교육방향과 달리 최상의 인격을 지닌 깨달은 인간이 되기 위해 자발적으로 학습을 해 나아가는 학습자 위주의 교육적 비전을 수행과정을 통해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의식의 지향성과 관련하여 『청정도론』은 초기불교의 인식과정과 다른 특색을 지닌다. 초기불교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이 여섯 가지 대상(六境)을 만나서 여섯 가지 인식작용(六識)이 있게 된다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각각 認識한다고 표현하는 점에서 현상학이나 다른 서양철학 등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측면을 엿볼 수 있으며, 또한 이렇게 六根⋅六境⋅六識이 서로 만나서 18계를 형성하지만, 18계 또한 初禪에서 四禪에 이르는 禪定修行에 이어서 四念處를 닦음으로 無常, 苦, 無我임을 비구가 깨닫고 離欲의 수행과정을 거쳐 해탈을 지향한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반면에 청정도론은 초기불교와 다르게 近接三昧와 本三昧에 이르는 과정과 욕계, 색계, 무색계에 배대되는 初禪에서 四禪에 이르는 禪定修行을 五門認識過程과 意門認識過程에 의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과정은 인식과정이고, 또한 모든 것을 꿰뚫어 아는 통찰지로 점차적으로 凡夫의 種姓에서 벗어나 聖者의 種姓에 해당하는 일곱 번째 수행단계인 ‘지와 견에 의한 청정’에 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마찬가지로 오문인식과정과 의문인식작용에 의한 인식과정을 거친다.
범부로부터 성자로 나아가는 수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의식의 흐름은 범부의 인격으로부터 성자의 인격으로 점차적으로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일곱 가지 단계의 수행과정에 나타나는 의식흐름에서 인간형성의 교육적 의의를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밖의 의의로 비구는 통찰지에 의한 의식전변으로 닙빠나를 지향하여 깨달은 인간으로 되어 간다는 측면에서 교육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의미의 주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수행은 언어를 떠나 철저히 몸과 마음으로 자주적으로 수행을 통해 이루어지는 체험에 중점을 두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교육적 의의는 교육과정의 어원인 ‘꾸레레’가 인간의 내면의 자아가 경험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라면, 청정도론의 일곱 가지 단계의 수행과정은 불교적 ‘꾸레레’로 자아가 아니라 무아에 중점을 두고 닙빠나를 향해 경험해 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꾸레레’는 회상적, 전진적, 분석적, 종합적 특성을 띠는 네 가지 단계로 자아가 나아가며 겪는 교육적 경험을 논하고 있다. 그러나 청정도론의 일곱 가지 단계의 수행과정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전체적으로는 계, 정, 혜의 수행이지만 사마타와 위빠사나로 집약되는 수행과정을 통해 마음을 닦음으로써 무상, 고, 무아를 깨닫고 닙빠나를 체험하는 불교적 ‘꾸레레’인 것이다.
불교적 ‘꾸레레’는 인간형성의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일곱 가지 청정의 수행단계도 인간형성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내면적인 마음이든, 외부로 드러나는 행동이든, 무엇이든지간에 이것들을 갈고 닦아 닙빠나에 도달하는 인간으로 되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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