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도서관
신라 중대의 선법 전래와 나말 려초의 구산선문 형성 : 북종선과 남종선의 전래와 안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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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유형학술지논문
- 저자명고영섭
- 학회/출판사/기관명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 출판년도2014
- 언어한국어
- 학술지명/학위논문주기신라문화
- 발행사항187-216
- ISBN/ISSN44
- 소개/요약이 논문은 신라 중대의 북종선(北宗禪) 전래와 하대의 남종선(南宗禪) 수용 및 안착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당시 불교계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정계 왕족들에게 밀려난 방계 왕족과 두품 귀족 출신 및 그 자녀들은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였다. 이들에게 접목된 새로운 사상은 선종(禪宗)이었고 새로운 탈출구는 당나라였다. 정계 왕족들에게 밀려난 방계 왕족들과 두품 귀족들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출사’(出仕)와 자기의 면목을 찾기 위한 ‘출가’(出家)를 위해 당나라로 향하였다. 당대(唐代) 선법의 황금시대에 참여하였던 출가자들은 자기를 성찰하고 자신을 확립하는 선법에 매료되었다. 그들은 치열한 수행과 빼어난 지혜로 당대 선법의 정수를 흡수하였다. 이들은 법랑(法朗)-신행(神/信行)-준범(遵範)-혜소(惠炤)-법량(法諒)/혜은(慧隱)-지증(智證)-양부(楊孚)로 이어지는 북종 선법과 접목하였고, 뒤이어 도의(道義)가 전해 온(821) 남종 선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도의에 이어 귀국한 남원 실상사의 홍척(洪陟)과 곡성 동리산의 혜철(慧徹) 그리고 상주 장백사에서 하동 쌍계사로 옮긴 혜소(惠炤) 등은 왕실의 극진한 존경과 함께 지방 호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삼국 통일 이후 신라 사상계를 주도하였던 화엄학승들은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사상 전개의 노력을 보이지 않고 안으로는 지배세력의 보호아래 안주하면서 선학들의 저술들에 대한 훈고학적인 주석학에 빠져있었다. 밖으로는 선왕들의 봉덕(奉德)과 추선(追善) 공양(供養) 의례에만 관심을 두었다. 방계 왕족들도 자신들의 선왕 열조를 봉덕하기 위해 사찰을 축조하는 일에만 힘을 기울였다. 구산선문의 개조 및 개산조들은 왕실의 화엄교단에 맞섰던 방계 왕족들과 중앙의 진골 귀족들과 연루된 지방호족들의 도움에 의해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터를 잡았다. 방계 왕족들과 귀족들은 산문 건립을 지원하면서 새로운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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