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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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 武宗의 불교정책과 禪宗 자세히보기
  • 자료유형학술지논문
  • 저자명장미란(동국대학교)
  • 학회/출판사/기관명한국선학회
  • 출판년도2010
  • 언어한국어
  • 학술지명/학위논문주기禪學(선학)
  • 발행사항25 235-271
  • ISBN/ISSN235-271
  • 소개/요약무종이 시행한 파불정책의 과정과 원인, 그리고 이로 인한 불교계의 변화, 특히 선종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무종파불은 842-846년에 일어났으며, 845년에 가장 엄격하게 시행된다. 그 결과 사원과 승려의 수는 최소한으로 남겨졌고, 사원과 불상 등은 파괴하여 화폐, 농기구나 공공사업의 건축물 등을 만드는 데에 쓰였다. 또한 환속시킨 승려와 사원의 노비들은 조세를 납부하도록 만들고, 사원의 재산은 국고로 몰수된다. 원인으로는 다음과 같다. 정치사회적인 면은 귀족세력의 약화와 지방세력의 증대, 환관과 관료간의 세력다툼, 중국주변지역의 붕괴 등이다. 이로써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고, 민중과 결합된 실천불교가 요구된다. 경제적인 면은 국가재정의 피폐와 불교교단의 부패다. 세금과 부역의 면제, 사원건축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승려들의 생활비, 사유재산의 증대, 승려의 타락 등으로 인한 국가재정의 어려움이다. 도교와의 관계는 실권자의 불교신앙과 관련된다. 불교신자인 환관 구사량이 죽은 후, 도사인 조귀진과 도교신자인 이덕유가 실권을 잡고 때마침 무종이 도교를 광적으로 믿게 되면서 철저히 파괴되었던 것에서 알 수 있다.무종의 파불은 삼무일종의 법난 중 유일하게 중국 전역에서 실시되었으며, 그 원인은 경제면, 정치사회면, 사상면의 순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교단이 국가중앙기관에 예속되어 통제를 받았다는 점과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파불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승려나 사대부지식인의 노력이 없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말법의식이 없고 오히려 말법의식을 초월한 새로운 현실주의적인 불교를 지향하게 되었다는 점 등을 특징으로 꼽아 보았다.끝으로 무종의 파불과 선종과의 관계이다. 본 부분은 불교가 파불상황에서 도리어 선종의 발전계기를 만든 요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는 불교신자인 지방관찰사의 노력으로 파불을 실시하지 않아서 임제의현과 조주종심이 조사선의 토대를 마련한 것과 선수행을 위한 지침서 저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교육과 점검, 그리고 환속승의 새로운 수행방법 제시 등의 선사들의 노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