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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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 선승들의 정토사상-大慧宗杲를 중심으로 자세히보기
  • 자료유형학술지논문
  • 저자명정영식
  • 학회/출판사/기관명한국선학회
  • 출판년도2018
  • 언어한국어
  • 학술지명/학위논문주기선학
  • 발행사항49호 5-37
  • ISBN/ISSN
  • 소개/요약송대의 선승들 가운데는 정토왕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禪苑淸規』를 보면 선 승이 병이 들어 延壽堂에서 요양할 때나, 사망하여 장례식을 행할 때도 사망한 선승 이 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송대에는 선승이라도 염불을 하고, 정토왕생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토관은 선승에 따라서 여러 가지였다고 생각된다. 먼저 長蘆宗賾(생몰연대 미상)은 蓮華勝會라 는 염불결사를 조직하였으며, 어머니로 하여금 염불하여 정토왕생을 추구하게 하였 다. 나아가 본인도 서방정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에 반해 眞歇淸了(1089~1151) 는 유심정토의 경향이 강하였는데, 재가신자를 대상으로 설법할 때는 때때로 정토왕생을 권하기도 하였다. 간화선승의 예를 보면, 圜悟克勤(1063~1125)은 철저히 선승으 로서의 자세를 견지하였으므로 오직 유심정토만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의 제자인 大慧宗杲(1089~1163)는 지옥에 대해서 자주 설하였고, 재가신자를 위한 추선의례에서 는 정토왕생을 설하기도 있었다. 대혜가 정토왕생을 설하는 것은 주로 유배에서 돌아 온 1156년(68세) 이후였다. 이와 같이 대혜가 지옥에 대해 자주 설하고 재가신자들로 하여금 정토왕생을 추구하게 한 것은 이전의 다른 간화선승과 다른 특징이다. 하지만 이것은 재가신자들을 위해서 방편적으로 설한 것이며, 대혜 자신은 선승으로서 유심 정토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나아가 염불을 닦은 적도 없었다.